2021년 5월 16일 일요일

비가시적 은혜의 가시적 형태

질문하는 신학 P.641

아우구스티누스 성례를 "비가시적 은혜의 가시적 형태" "신적인 것을 담지하고 있는 기호"

초월적인 절대자가 세계에 내재하심은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행17:28)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가시적 세계의 존재 근거이자, 물질 안에도 현존하시며 물질을 통해 인간과 소통하시고 물질과 함께 활동하신다. 

초월적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물질적 세계 안에 내재하시며 활동하신다. 

성사(성사)와 성례(성례)

위키백과 21.5.16

성사(고대 그리스어μυστριον 뮈스트리온[*]라틴어Sacramentum 사크라멘툼[*]영어Sacrament 새크러먼트[*]) 또는 성례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혜가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전달되는, 쉽게 말해서 하느님의 은혜를 받는 기독교의 예식이다. 형태적으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기독교의 종교적 예식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교파별로 개신교는 성례성례전으로 부르며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성공회는 성사라고 한다.


가톨릭 : 세례, 견진, 성체(성찬), 고해, 병자, 성품, 혼인 7성사

개신교 : 세례, 성찬


성례전 : 인효적 - 문자적으로 '사역을 행하는 그 사람 때문에' 효력이 있다는 의미

성례전 : 사효적 - 문자적으로 '거행되는 그 사역 때문에' 효력이 있다는 의미


루터는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고 사죄선언을 받는 가톨릭의 고해성사와 다르게 하나님과 이웃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이 참회라고 보았다. 진정한 참회란 한편으로는 우리의 죄를 놓고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하지만, 공동체에서 죄를 고백하고 죄의 고백을 듣는 데는 상당한 지혜와 인격적 성숙과 책임이 요구된다. 

P.656






질문하는 신학

 2021년 5월 15일(토)

일월도서관에서 다시 빌려보는 책이다. 



목차

머리말
이 책을 어떻게 사용할까?

I. 하나님과 세계
1부 신학의 정의와 자료
1장 신학의 정의: 신학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2장 신학의 자료: 신학을 공부할 때 꼭 책이 많이 필요한가?
3장 성서론: 성서, 하나님 말씀인가 인간이 쓴 책인가?

2부 신론
4장 삼위일체론: 어떻게 셋이 하나일 수 있을까?
5장 계시론: 하나님은 어떻게 인간에게 자기를 알려 주시는가?
6장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7장 창조론: 우주는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8장 섭리론: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3부 하나님과 세계
9장 하나님의 뜻: 전쟁과 질병도 하나님의 뜻인가?
10장 신정론 I: 악과 고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1장 신정론 II: 선한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에 왜 악이 있을까?
12장 신정론 III: 우리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도 괴로워하시는가?

II.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
4부 그리스도론
13장 그리스도론: 1세기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4장 예수의 생애와 사역: 나사렛 예수는 누구이시며 어떻게 사셨는가?
15장 성육신과 부활: 그리스도인이 믿는 가장 큰 기적은 무엇인가?
16장 속죄론: 한 인간의 죽음이 어떻게 다른 인간들을 구원하나?

5부 인간론
17장 하나님의 형상: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18장 영혼과 몸: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나?
19장 욕망론: 하나님께서는 왜 탈 많은 욕망을 만드셨는가?
20장 죄론: 죄를 강조하는 그리스도교는 비관론인가?
21장 타락과 원죄: 왜 아담 때문에 우리까지 심판받아야 하는가?

6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인간
22장 칭의와 그리스도인의 삶: 믿음으로만 의로운 인간이 될 수 있는가?
23장 용서의 은혜: 인간과 세계를 온전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24장 종교예술: 예술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는가?

III. 성령과 공동체
7부 성령론과 교회론
25장 성령론 I: 오순절에 오신 성령 하나님은 누구신가?
26장 성령론 II: 성령께서는 교회와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
27장 성령의 은사: 성령 충만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
28장 교회론 I: 교회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29장 교회론 II: 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교회에 속해야 하는가?

8부 교회에서의 삶
30장 성례론: 말씀 중심의 개신교에서 성례가 여전히 중요한가?
31장 세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32장 성찬: 빵과 포도주를 먹는 게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가?
33장 기도: 전능하고 전지한 존재에게 왜 기도를 해야 하는가?

9부 종말론
34장 종말론 I: 현재의 삶 너머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35장 종말론 II: 그리스도인은 종말을 왜 기다려야 하는가?
36장 안식일, 그리스도인에게도 여전히 중요한가?

2021년 5월 8일 토요일

죄의 담론

 < 2021년 5월 8일 >

교회의 "죄"담론에 빠진 것이 또 있다. 죄는 관계적 개념이다. 죄란 하나님, 타인들,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침입이요 위해 행위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관계의 선물이다. 성경적으로 하자면 죄도 은혜도 법률적 관점보다 관계적 관점에서 정의해야 더 맞다.


죄는 명령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깨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해결책은 더 나은 교육이나 더 나은 의지력이 아니라, 관계에 화해와 회복을 이루는 더 나은 길 즉, 십자가다

- 관계의 영성 중에서 -

새로운 교회 공동체에 대한 단상

 < 2021. 5. 8 >

공동체의 관한 단상

코로나 팬데믹이후 과연 과거의 교회내의 공동체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꼭 코로나 이전의 공동체의 모습이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 맞는가?

원치 않는 만남과 교제를 강요당하지 않았었나?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보다는 인맥확보와 교회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식사중심의 사교의 자리가 아니었나?

과연 공동체란 무엇인가? 왜 믿음의 선배들, 목회자들은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인가?

이제 코로나로 인해 공동체 모임을 못한지 1년이 넘는 마당에 예전의 모임중심의 공동체가 가능할까?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예배의 형식, 교제에 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도들에게 "과거로 다시 돌아가자"라고 강요하는 것이 맞을까? 설사 몸은 회귀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도 회귀가 될까? 

공동체는 이전의 내가 몸담았던 교회의 경우, 교구별로 지역에 따라 구역을 나누어 날짜를 정해서 만남을 갖고 기도와 서로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였다. 하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 내면의 깊은 속이야기를 꺼내 놓기엔 마땅치 않은 그런 자리였다. 

앞으로의 공동체는 이랬으면 좋겠다.

각자의 삶의 방식에 따라서 각양각색의 고통이 있을것이다. 어떤이는 지금 부부간의 갈등으로 당장 법원에 가기 직전인 사람도 있고, 퇴직을 당해 당장 다음달부터 생계가 막막한 사람도 있고, 아이가 난치병에 걸려 막대한 병원비도 걱정이고 아이의 앞으로 미래도 걱정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 공동체란?

정의가 없다

교회 공동체란?

<위키백과>

교회적 공동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교회적 공동체(라틴어Ecclesial Communities)는 가톨릭교회에서 정의하는 ‘교회(敎會, Ecclesia)’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기독교 단체를 일컫는 용어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칠성사를 온전히 유지하고, 특히 성품성사에서 사도 계승을 보존하고 있는 공동체들뿐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가톨릭교회와 비록 완전한 친교를 이루고 있지 않고 갈라져 있기는 하지만, 성사를 모두 온전히 보존하고 있고, 특히 사도 계승의 힘으로 사제직과 성찬례를 지니고 있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이유를 들어 동방 정교회와 오리엔트 정교회 등의 동방 교회들 역시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교회라는 용어로 불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에서 동방 교회들은 ‘개별 교회들(Ecclesiae particulares)’ 또는 ‘지역 교회들(Ecclesiae locale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개별 가톨릭교회의 자매 교회들(Ecclesiae sorores)로 불린다.

그러나 16세기 소위 종교개혁에서 생겨난 서방 교회의 일부 공동체들인 개신교에 대해서는 가톨릭교회의 시각에서 볼 때, 성품성사에서 사도 계승을 잇고 있지 않아 교회를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고, 특히 직무 사제직이 없는 까닭에 성찬 신비의 참되고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고 있지 않으므로, 가톨릭 교리에 따라 고유한 의미에서 ‘교회들’이라고 불릴 수 없다고 보고 있다.[1] 따라서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들 개신교 교파들을 교회가 아니라 교회적 공동체라고 부르고 있다. 성공회 역시 여기에 포함되는데, 가톨릭교회는 성공회의 성직 서품은 물론 성찬례의 유효성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으며, 완전히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1896년 교황 칙서 《사도의 관심에 관하여 (Apostolicae Curae)》를 통해 이 같은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2]